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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초기 전투 당시 한국군의 대전차전(3)


중동부전선

북한군은 화천-춘천 축선, 인제-홍천 축선 공격을 위해 2군단 예하 제 12보병사단을 제1제대로 제5보병사단을 제2제대로, 제 603모터사이클연대를 고속기동부대로 편성하였다. 이들의 병력은 3만6938명, 기계화장비는 BA-64장갑차 54대, Su-76 자주포 48대 그리고 대수미상의 T-34로 구성되어있었다. 여기에 대항하는 국군 제6보병사단의 병력은 9338명으로 4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었으며 화포수도 비교가 안될정도로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제603모터사이클 연대가 보유했던 BA-63 장갑차


춘천-가평전투

25일 오전 국군 7연대의 경계진지를 톨파한 북한군은 SU-76 자주포를 앞세우고 5번 도로를 따라 남진하고 있었다. 이를 대전차포 중대장 송광보대위가 발견하고 제2소대를 지내리 남쪽 1.5km 떨어진곳으로 급파했다. 포 방열을 마친 제2소대는 두번사격해여 적자푸오에 무도 명중시켰으나 자주포에 대한 피해를 없었고 2소대는 옥산포로 철수하였다. 13:00 포병사격으로 잠시 후퇴했던 북한군은 자주포 10대를 앞세우고 다시 옥산포로 공격해 왔다. 옥산포로 후퇴했던 제2소대는 2대의 자주포가 사거리 내로 들어오자 다시 사격을 가했으나 이번에도 자주포는 건재했다.  이에 소대장 심일중위는 육탄공격을 하기로 결심하고 5명으로 특공대를 구성하였다. 자주포가 가까이 오자 대전차사격과 동시에 육탄공격을 실시해 자주포2대를 파괴하고 승무원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에 적자주포는 14:00경 서원 방면으로 후퇴하였다.

26일 제7연대 1대대가 옥산포로 역습을 가하던중 13:00경 북한군은 자주포를 앞세우고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2.36인치 로켓포를 발사해서 적 자주포에 명중시켰으나 격파하지 못하였다. 대대는 1시간에 걸친 교전끝에 14:00경 적진에서 이탈하게 된다. 

인제-홍천전투

25일 11:50 6사단 2연대 1대대는 홍천군 어론리에서 자주포를 앞세운 약 1개 연대의 병력의 공격을  받았다. 아군 대전차포와 로켓포의 기습공격은 받은 자주포 2대가 파괴되자 적은 사치리 북쪽 1km 지점까지 후퇴하였으나 재차 공격해오는 적을 막기엔 역부족이였고 결국 12:30에 어론리 일대에서 자은리로 철수하게 된다.

28일 09:00경 19연대 3대대와 2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말고개에 북한군은 10여대의 전차와 자주포를 앞세워 공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앞서 19연대장 민병권 중령은 적의 기갑부대를 공격할 11명을 특공대를 선발하여 파괴방법 등을 교육시킨후 말고개로 배치시킨상태였다. 이들은 말고개 정상에서 한계리 방향으로 도로 양편에 10~20m 간격으로 배치되었고 은엄폐하거나 호를 팔 여건이 되지 않아 시체로 위장한채 적 전차와 자주포가 오길 기다렸다. 선두전차 대열아 적운 말고개를 오르기 2연대와 19연대 3대대는 모든 화력을 북한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공격을 받은 북한군은 당황하여 전차와 보병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와중에도 북한군 보병 일부는 공격대형으로 산개하여 공격하기 시작했으나 매복해 있던 아군 기관총조의 분전으로 끝내 그들이 전차와 다시 합류하는 일은 없었다. 이어 말고개 첫 번째 S자 굴곡지점에 적 자주포와 전차가 도달했고 이 지점에 매복해 있던 57mm 대전차포가 사격을 가해 명중시켰으나 전차는 파괴되지 않았고 후속전차의 사격에 의해 포반원 전원이 전사하였다. 이어 북한군은 2번째 S자 굴곡을 지나기 시작했고 선두 자주포의 측면이 노출되자 30m쯤 떨어져있던 2연대 대전차포중대 2소대 1분대장 김학두일등중사는 철갑탄을 장전하고 직접사격하여 자주포의 측면을 명중시켰다. 이어서 2탄,3탄을 재차 발사하였고 선두자주포가 정지하여 전차행렬이 정지하자 후속자주포에도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19연대 특공대원 조달진 일병이 정지한 후속 자주포에 뛰어올라 수류탄 2발을 집어넣어 파괴시켰다. 이를 본 다른 특공대원도 적 전차들에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4번 전차는 북쪽으로 되돌아가려고 방향을 틀다가 화양강으로 굴러 떨어졌으며 나머지 전차의 승무원들은 탈출하려다 사살당하는등 아비규환에 빠졌다. 후미전차는 전차장이 상황파악을 하려 해치를 열고 상황을 관측하고 있었다. 이때 10m 떨어진 능선에서 2.36인치 로켓포가 발사되었고 그대로 해치안으로 들어가 폭발하면서 전차가 파괴되었다. 이에 적 전차행렬은 말고개에 전부 갇혀버렸고 결국 10여대의 전차와 자주포는 말고개에서 전멸당했다.

말고개 전투 당시 육탄공격이 이루어졌던 곳. 지금은 도로의 흔적을 찾을수 없다.
 출처-http://www.silvernet.ne.kr/insiter.php?design_file=37986.php&article_num=13206


동부전선

동부지역에서는 국군 제 8사단이 북한 38경비 제1여단, 제5사단 10연대, 제945육전대와 제766부대의 침공에 맞서 강릉을 방어하였다. 북한군의 병력은 제1경비여단 약 8000명, 제5사단 제10연대 약 3000명, 제945육전대와 제 766부대가 약 3000명으로 1만 4000명, 장비수는 122mm 곡사포 4문, 76mm 견인포 24문, su-76 4문, 45mm 대전차포 20문, 120mm 박격포 14문, 82mm 박격포 36문, 60mm 대전차로켓포를 200여문을 동원하였다. 이에 대항하는 국군 제8사단의 병력은 6886명이였으며 장비는 105mm 곡사포 15문, 57mm 대전차포 12문, 81mm 박격포 24문, 60mm 박격포 38문, 2.36인치 로켓포 128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양양-강릉 전투

15:30경 제10연대 2대대 방어선으로 su-76 자주포 3대가 나타나 아군 57mm대전차포 2문이 사격해서 명중탄을 내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자주포는 계속남하하였다. 계속 남하하던 자주포는 아군이 파괴한 교량에 이르어서야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였다.



정리

북한군의 전차에 대한 남한의 대비책은 전무했다. T-34에 대항할수 있는 대전차화기가 없었던것은 물론이고 대전차 장애물 구축에 대한 교육도 교리도 없었다. 화기에 대한 교육에서도 2.36인치 로켓포로 적전차를 모든부위에서 파괴할수 있다 라는 잘못된정보를 교육하거나 2.36인치 로켓포의 최대사거리를 넘는곳에서 사격을 실시하게 하는등 숙련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파괴되지 않는 적 전차를 보고 패닉에 빠지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에 불구하고 육탄공격으로 진격을 저지시키거나 간혹 궤도를 노려서 적전차를 기동불능에 빠지게 하는등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기도 했다. 북한군은 전차를 집중운용하는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전선에서 투입시켜 보병과 같이 공격을 하게 하였는데 북한군은 전차에 상당히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고 초기 육탄공격에 전차 몇대를 잃자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만약 국군에 제대로된 대전차화기가 있어 T-34을 확실하게 격파할수 있었다면 전차에 의해 어이없게 방어선이 돌파당하는일은 없었거나 적어도 대전차장애물 운용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있어서 전차의 진격을 방해할수 있었더라면 3일안에 서울이 점령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참고자료 : 北韓의 全面南侵과 初基 防禦戰鬪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경기향토사학. 제17집 (2012)-6·25 한국전쟁 초기전쟁사 : 의정부지구 전투를 중심으로
               군사평론. 제387호 (2007년 6월)-임무형 지휘측면에서 의정부, 춘전-홍천지구 전투 분석
               軍史 = Military history. 제80호 (2011년 9월)-6·25전쟁시 전차운용의 특징과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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